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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해야 돈도 벌 수 있다

어떤 중풍환자 이야기

by 돈타령 2023. 1.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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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버나움에 한 중풍병자가 있었다. 중병에 걸려있는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듯이, 그 중풍병자 역시 회복에 대한 모든 소망을 잃어버렸다.

그의 질병은 죄악적이고 부절제한 생애의 결과였다. 그러므로 그의 고통은 양심의 가책으로 인하여 더욱 심해졌다. 그는 자신의 고통을 바리새인들과 의사들에게 호소하였으나, 모든 일이 허사였다. 의사들은 그의 병을 불치의 병이라고 선언하였으며, 바리새인들은 그를 죄인이라고 정죄하면서 하나님의 진노 아래서 그가 죽을 것이라고 선언하였다.

 

그 중풍병자는 깊은 절망의 늪에 빠졌다. 바로 그러한 때에 예수님의 치료사업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자기처럼 죄가 많고 속절없던 사람들도 고침을 받았다는 소문을 들었다. 누군가에 의해서 구세주께로 운반되어 갈 수만 있다면, 자기도 고침을 받을 수 있을 것을 믿고 용기를 얻었다. 그러나 그 당시 많은 유대인들이 믿고 있듯이, 자신의 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받고 있다는 생각이 머리 속을 스칠 때마다, 모든 희망은 순식간에 사라지곤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치료에 대한 소망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그 중풍병자의 가장 큰 소원은 죄의 짐에서 해방되는 것이었다. 그는 예수님을 뵈옵고 용서의 보증과 하늘이 주는 화평을 얻고자 갈망하였다. 자신의 죄가 용서받을 수만 있다면, 자신의 병이 회복되지 못할지라도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든지 죽든지 그 결과를 받아들일 것이겠다고 생각하였다. 그의 소원은 육체적 질병의 치료에 국한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영적인 치료와 회복에 있어서 더욱 절실하였다.

 

그에게 있어서 더 이상 잃어버릴 시간이 없었다. 이미 쇠약해진 육체에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기 시작하였다. 그는 친구들에게 자기를 침대에 누운채로 예수님께 운반해 달라고 간청하였다. 친구들은 그의 요청을 기꺼운 마음으로 들어주었다. 그러나 문제가 있었다. 구주께서 집회를 열고 있는 집의 안과 밖에 너무나 많은 군중들이 빽빽히 모여 있었기 때문에, 그 환자와 친구들은 도무지 예수님 앞으로 나아갈 수도 없었으며, 그분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곳까지도 갈 수 없었다. 오늘날에도 예수 그리스도를 둘러싸고 있는 수많은 형식적인 그리스도인들 때문에 진정으로 그분을 만나고자 하는 사람들이 예수를 만나는 일에 방해를 받고 있다.

 

그 때, 예슈아께서는 페트로의 집에서 가르치고 계셨다. 제자들이 예슈아의 주위의 가장 가까운 곳에 앉아 있었고, 또한“갈릴리 각 촌과 유대와 예루살렘에서 나온 바리새인과 교법사들”도 앉아 있었다(누가복음 5:17).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을 참소하기 위한 정탐꾼으로 온 자들이었다. 그들 외에도 혼잡한 군중, 열성 있는 자들, 오기심을 가진 자들, 믿지 않는 자들이 모여 있었다. “병을 고치는 능력이 예수와 함께 하더라.”누가복음 5:17. 생명의 하나님께서 군중들 가운데서 말씀을 가르치고 있었지만, 바리새인들과 교법사들은 그분의 임재를 인식하지 못했다. 그들은 자신들에 대해서 아무런 부족함도 느끼지 못하였으므로 고침을 받는 일이 그들에게는 상관이 없었다. “주리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으며 부자를 공수로 보내셨도다.”누가복음 1:53. 스스로 부요하고 부족한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영이 접근할 여지가 없다.

 

중풍병자를 실은 침대를 들고서 군중들 사이를 뚫고 들어가려고 여러번 시도하였지만, 허사가 되고 말았다. 그 병자는 말할 수 없는 고민의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처럼 갈망하던 희망이 바로 저기에 있는데, 어떻게 그 희망을 버리고 돌아설 수 있겠는가? 그의 마음 속에 모든 사람들의 상식과 생각을 초월한 부탁의 말을 친구들에게 하게 되었다. 그는 친구들에게 자신을 지붕 위로 운반하여 지붕을 뚫고 예수님께로 내려달라고 하였다.

중풍병자는 지붕 위로 올려지고, 지붕을 뚫은 구멍을 통과하여 예수님 발 아래에 놓여지게 되었다.

 

예수님의 설교는 중단되었다. 구주께서는 슬픔과 두려움에 잠긴 그 얼굴을 바라보시고 당신을 주목하고 있는 애원하는 눈을 바라보셨다. 그분께서는 무거운 짐에 눌려 있는 그 영혼의 갈망을 잘 아셨다. 그 중풍병자가 집에 누워 있었을 때, 그의 양심을 각성시켜서 죄를 깨닫게 하셨던 분은 그리스도셨다. 그가 자기의 죄를 회개하고 자신을 완전하게 고쳐주실 수 있는 예수님의 능력을 믿었을 때, 구세주께서는 그의 심령에 복을 주셨다. 처음에는 희미한 믿음만이 그의 마음 속에 있었지만, 그 믿음은 성장하여서 예수께서 죄인을 도와주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예수께서는 그의 마음 속에서 일어난 변화를 주시하셨다. 믿음은 그리스도 앞에 나아오고자 하는 그의 노력과 함께 더욱 강하게 자라났다. 예수께서는 그 병자의 귀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게 들리는 음악과 같은 음성으로“소자야 안심하라.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고 말씀하셨다(마태복음 9:2).

 

그는 죄의 짐이 자신의 영혼에서 벗겨져 나가는 것을 느꼈다. 그는 자신의 영혼이 새롭게 되었다는 사실을 의심할 수 없었다. 많은 사람들은 죄사함을 추상적이고 막연한 신비라고만 생각하는데, 용서는 우리의 마음 속에서 실제적인 변화를 창조해 낸다. 누가 죄를 용서할 수 있는 그분의 능력을 부인할 수 있는가? 희망이 절망을 대신하고, 즐거움이 우울한 마음을 대신하였다. 육체적 고통을 사라지고 온 몸은 변화되었다. 그는 더 이상의 것을 요구하지 않은채 평화로운 침묵 속에 침상에 누워 있었다. 실로 오랜 세월만에 느껴본 평화와 기쁨의 순간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숨을 죽이고 그 이상한 사건을 하나 하나 지켜보고 있었다. 그들 역시 죄로 인하여 심령에 고통과 압박을 느끼고 있었다. 그들도 죄의 짐에서 벗어나기를 갈망하였다. 죽음과 형벌에 대한 두려움에서 해방되기를 원하였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사람들에 대한 자신들의 영향력을 잃어버릴 것을 염려한 나머지,“참람되도다. 오직 하나님 한분 외에는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고 말하였다(마가복음 2:7). 예수님의 시선이 그들과 마추치자 그들은 그 시선을 피하여 움추렸다. 예수께서는“너희가 어찌하여 마음에 악한 생각을 하느냐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이 어느 것이 쉽겠느냐 그러나 인자가 세상에서 죄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고 말씀하셨다. 이어서 예수께서는 중풍병자를 향하여“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고 말씀하셨다(마태복음 9:4-6). 그러나 들것에 실려서 예수님께 왔던 그 사람은 젊음의 탄력과 힘을 가지고 자기 발로 일어섰다. 그는 즉시“상을 가지고 모든 사람들 앞에서 나가거늘 저희가 다 놀라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며 가로되 우리가 이런 일을 모두지 보지 못하였다 하더라.”마가복음 2:12.

 

그 썩어가는 육체에 건강을 회복시키는데는 바로 창조의 능력이 요구되었다. 땅의 흙으로 창조된 사람에게 생명을 주셨던 바로 그 음성이 죽어가는 중풍병자에게 생명이 회복되도록 말씀하셨다. 그리고 육체에 생명을 주신 바로 그 능력이 마음을 새롭게 하였다. 육체의 치료는 그리스도께서 마음도 새롭게 해주실 수 있다는 강력한 증거였다. 그리스도께서는 중풍병자에게 일어나 걸어가라고 명령하시고,“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리라”고 말씀하셨다.

 

중풍병자는 그리스도 안에서 심령과 육체가 모두 치료된 것을 깨달았다. 그는 육체의 건강을 누리기 전에 심령이 먼저 치료를 받아야만 했다. 그리스도께서는 육체의 질병을 고치기 전에, 마음을 죄로부터 해방시키고 심령을 죄로부터 정결하게 하셨다. 오늘날, 질병의 치료를 받고자 하는 많은 사람들이 이 점에 유의해야 한다. 그들은 육체의 질병의 치료를 간구하기 전에 먼저 그들 마음 속에 있는 죄와 세속을 정결하게 해주실 것을 간구해야 한다. 자신에게 있어서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깊이 생각해야 한다.

 

이천년 전에 중풍병자가 들었던“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는 기별을 듣고자 갈망하는 병자들이 지금도 너무나 많이 있다. 불안하고 채워지지 않는 욕망의 원인인 죄의 짐이 그들의 질병의 기초가 되고 있다. 그들은 심령을 치료해주시는 분 앞에 나오기 전까지 결코 안식을 얻지 못할 것이다. 오직 그분께서 주실 수 있는 화평과 평안만이 심령에 활력을 주고 육체에 건강을 줄 것이다.

 

고침을 받은 중풍병자가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하나님께 대한 찬양이 흘러나왔으며, 가볍고 활기찬 발걸음으로 군중 사이를 뚫고 지나갈 때, 사람들은 두려움과 경이로움이 가듣찬 얼굴로 그를 바라보면서“오늘날 우리가 기이한 일을 보았다”고 조용히 속삭였다(누가복음 5:26). 하나님께서 그의 육체와 마음 속에서 행하신 기적으로 인하여, 그의 생애에는 더 이상 의심과 불신이 존재하지 않았으며, 그분의 말씀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충성과 순종이 계속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고침을 받은 사람에게서 나오는 자연스런 열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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