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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해야 돈도 벌 수 있다

어떤 목사의 병상 일기

by 돈타령 2023. 1.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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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치의 병으로 인하여 자리에 누워 있는 내게 있어서 세상은 더 이상 유쾌하고 즐거운 것이 아니었다. 힘겨운 노동을 하는 사람이 어서 빨리 해가 져서 밤이 오기를 기다리듯 나 역시 힘겨운 생활이 끝나고 죽음이 오기를 기다리게 되었다. 꽃을 보아도 즐겁지 않았고 새가 노래하는 소리를 들어도 감흥이 없었다.

목사인 내가 다른 사람들을 구원의 길로 인도할 수 없다면 더 이상 가족과 친지들을 괴롭히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다음과 같은 욥의 절규가 나에게도 있었다. "왜 그가 수고하는 자에게 빛을 주시고 영혼이 쓰라린 자들에게 생명을 주셨는가?  죽음을 기다리는 자들에게 죽음이 없는가? 그들은 보물보다도 더 그것을 찾다가 무덤을 발견하면 기뻐하고 매우 즐거워하는 자들인데..... 그의 길이 숨겨진 남자를 하나님께서 자신을 위하여 막으셨는가? (이욥 3장 20절-23절).

누워서 천장을 쳐다보면 지난날의 내 생애가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너무나 많은 실패와 잘못된 결정들을 생각할 때마다 숨이 막혀 왔다. 무익하게 낭비한 세월, 생각 없이 지나쳐 버린 기회, 알면서도 고의로 범한 죄들, 무관심하게 지나친 선의 기회들로 인하여 내 고통은 육체에 그치지 않았다. 하나님과 사탄의 영적 전쟁은 아직도 한창인데 나는 쓸모없는 군인으로 방에 홀로 누워서 군마가 동서로 치닫는 소리, 화살이 날아가는 소리, 적군의 북소리를 듣고 있었다. 나는 깊은 절망의 늪에 빠져 있었다.

불치의 병에 걸렸을 때 내게 두 가지 실망이 찾아왔는데, 하나는 나는 결코 다시 회복될 수 없다는 것이고 둘째는 나는 폐인이 되었으므로 하나님과 세상에 아무 쓸모도 없다는 것이었다. 그때 내게 성령께서 찾아 오셔서 다음과 같은 생각을 주셨다. 너는 어떻게 네 병이 불치라는 것을 아는가? 의사와 병원이 네게 불치의 선고를 내렸기 때문에 네가 스스로 좌절하고 주저앉아 있는 것이지? 우주를 창조하고 너를 만든 것이 하나님인데 어찌 너는 세상의 과학과 통계와 사망률에 의존하느냐? 의사는 창조주가 아니다. 이 세상의 의사와 병원이 너를 버렸을지라도 의사 중에 의사이신 하나님께 가라. 그분께는 세상이 알지 못하는 치료법과 처방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라. 현대 의학이 발전됨에 따라서 사람들은 의학을 신으로 만들었는데, 너도 의학이 할 수 없는 것은 하나님도 할 수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니?

물론 지붕에서 떨어져서 다리가 부러졌는데 의사에게 가지 않고 기도만 하는 것은 미련한 일이요 하나님을 믿는 바른 신앙이 아니다. 하나님은 열병을 치료하기 위하여 천연계 속에 키니네를 주셨다. 사람이 그것을 알면서도 사용하지 않는 것은 미련한 짓이다. 외과 수술을 받을 때에 사용하는 마취제에 대하여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을 허락하신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의사와 약품에만 의존하는 것은 잘못된 신앙이다.

내가 발견한 신앙 치료법
나는 하나님을 믿는 목사로서 내 불치의 병을 위하여 신앙 치료법을 사용하고자 한다. 신앙 치료법이란 기도와 위생과 하나님께서 천연계 속에 넣어두신 단순한 약초들을 사용하는 치료법을 말한다. 어떤 극단적인 마쉬아흐(그리스도)인들이 말하는 것처럼 의사는 마귀의 사자요 약품은 마귀가 준 독극물이라고 믿지는 않지만, 마쉬아흐인의 신앙 치료법은 난치병의 치료에 매우 효과적임을 나는 믿는다. 여기서 말하는 신앙 치료법이란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처럼 부처에게 절을 하거나 신령한 물을 마시는 것과 같은 우매함이 아니다. 신앙 치료법이란 몸을 자연의 창조주와 그 법칙에 맡기고 온 마음과 영혼을 그분께 의지하여 내 몸의 상태를 생명의 법칙하에 두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미신이 아니라 과학적 진리이다. 세상 의사들이 말하는 불치의 병에 걸렸을 때, 마쉬아흐인은 이러한 신앙 치료법에 몸과 마음을 맡겨야 한다.

병을 고치기 위하여 신앙을 갖는 것이 아니다. 그러한 신앙 치료법은 무익하다. 깨끗한 공기보다 더 좋은 강장제는 없으며 깨끗한 물보다 더 좋은 해열제는 없다. 특히 평안한 마음과 영혼은 최고의 회복제이다. 마쉬아흐인이 식물과 자연과 신앙에 의지하여 치료에 힘쓸 때 불안과 좌절과 고통은 사라지고 하늘로부터 놀라운 치료의 은혜가 내려온다.

목사로서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침대에 누워 있을 때 마귀는 내 귀에 다음과 같이 속삭였다. 너는 이제 아무 쓸모도 없는 폐인이 되었다. 이제 포기해라. 그러나 성령께서는 즉시로 내 마음속에 이러한 음성을 주셨다. 어떤 일을 해야만 마음의 평안이 생긴다면 그것은 참된 마쉬아흐인이 아니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어떤 공로가 없어도 마쉬아흐인의 마음속에는 평안이 있어야 한다. 네가 목사의 일을 하지 못한다고 해서 실망하고 좌절한다면 너는 아직 마쉬아흐인의 참된 평안과 행복을 알지 못하는 거야. 선교 사업은 단순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의 제물이어야 한다. 그 이상의 다른 의미가 있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은 네가 하는 선교 사업보다 상한 마음,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 있는 그대로의 마음을 원하신단다. 네가 만일 네 병마로 인하여 목회 사업을 하나님께 드릴 수 없다면 네 마음을 바쳐라. 어쩌면 하나님께서 너에게 이러한 병마를 허락하신 것도 네 마음을 얻기 위함이 아니겠니? 벹아니야의 마르타의 심정으로 열심히 동분서주하면서 뛰어다녔지? 이제 하나님께서는 너에게 말씀을 사모하는 미르얌의 심령을 주기 위하여 너를 바삐 뛰어다니지 못하게 만드셨단다. 네가 항상 부르던 찬송가 빈손 들고 십자가를 의지하네 의 진정한 의미를 이제부터 배워보렴.

나는 이제 손발을 놀릴 수도 없다. 강단에 서서 설교도 할 수 없고 바다 건너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배를 탈 수도 없다. 계속해서 주의 영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해 주셨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눈여겨보지 않는 너의 초라한 병실 안에서도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실 수 있단다. 불치의 병을 가진 환자의 얼굴에 나타나 있는 평안과 겸손, 그리고 인내와 정숙에서 나오는 미소는 네가 지금까지 한 모든 설교보다 힘 있는 것이 될 것이다. 방문객의 손을 잡고 드리는 너의 기도 소리에 사람들은 이 병실에서 천사의 임재를 느끼게 될 것이다. 네가 그러한 투병의 삶을 살 때 너는 사람들에게 짐이 되는 대신에 오히려 위로가 될 것이다. 지치고 외로운 자들은 너를 찾아오게 될 것이다. 그들은 너에게서 천사의 얼굴을 보고 말을 들으며 위로받게 될 것이다. 네가 멋진 설교를 할 때는 교인들에게 깊은 감화를 주지 못했지만 지금 네가 나누어 주는 말씀은 다른 사람들을 생명으로 인도하고 있단다.

즐거움이 없다고 말하지 말라. 동물적인 너는 병들었지만 천사적인 즐거움이 네게 있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병든 자가 너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병으로 죽어가고 있으며 1년에 수십만의 사람들이 무덤에 들어가고 있다. 너를 낳은 육신의 어머니도 너와 같은 고통을 겪으면서 세상을 떠났고 너보다 나이 어린 누이동생도 부모님의 말씀을 가슴에 새기면서 불평 없이 눈을 감았다. 너만 불행하고 너만 고통스러운 것처럼 생각하지 말라. 하나님은 당신의 외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서 사람이 당하는 최대의 고통을 겪고 죽도록 하셨다. 당신의 아들이 십자가에 매달려서 말할 수 없는 고통과 치욕의 시간을 보낼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침묵하시고 눈에 보이는 어떤 도움이나 기적도 베풀지 않으셨다. 지금 네가 통과하는 이 시간이야말로 하나님과 그분의 아들의 아픔을 조금이라도 맛볼 수 있는 특별한 기회란다. 무덤에 들어가는 것은 하루의 일을 마치는 것에 불과하다. 무덤이란 깊고 캄캄한 터널이 아니라 완전한 쉼 속에서 마쉬아흐의 재림을 기다리는 것이란다. 완전한 쉼 속에서 영광의 부활의 아침을 기다리는 것이 어찌 고통이 될 수 있겠는가!

무엇보다도 좋은 것은 하나님께서 지금 나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을 가졌는데 무엇이 더 필요하겠는가! 불치의 병은 두려움이 될 수 없다. 하나님 안에서 회복될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이 좁은 병실 속에서도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날 수 있다면 그것으로 나는 만족한다.

목사에게 보내는 조언
하나님의 뜻을 두려운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목사들에게 소중한 진리를 나누고 싶어서 이 조언을 드린다.

인간의 마음은 육체와 깊이 연결되어 있다. 그러므로 마음이 병들면 육체가 병들고 육체가 약해지면 마음 또한 연약해지기 쉽다. 질병이 생기는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는 부절제이다. 부절제의 결과로 병이 든다. 대부분의 목사들은 절제 원칙을 따라 생활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자연의 법칙과 영적 법칙을 마음대로 무시하면서 하나님께서는 목사인 나의 기도를 들으시고 병을 고쳐 주실 것이야 라고 생각하는 것은 믿음이 아니라 어리석은 추측에 불과하다. 생명의 법칙과 어긋나는 나쁜 습관을 고집하고 마음대로 식욕을 방종하는 마쉬아흐인이 드리는 기도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셔서 기적적으로 그런 사람의 건강을 회복케 하신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부절제를 조장하신다는 이상한 말이 된다. 하나님은 그런 분이 아니시다. 하나님께서는 에덴동산에서 인간을 창조하시면서 생명의 법칙 또한 함께 주셨다. 하나님께서 말씀 하셨다. "보라, 내가 온 땅에서 씨를 맺는 모든 채소와 씨가 있어 열매를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준다. 그것이 너희에게 양식이 될 것이다."(처음에-창세기 1장 29절)

누구든지 이 법칙에 순종하면 건강의 축복을 받고 불순종하면 그 복을 누리지 못하게 된다.

어떤 목사들은 그들의 식사 습관에 대해서 각별한 주의를 하지 않는다. 그들은 한 끼니에 너무 많은 음식과 너무 여러 가지 음식물을 취한다. 과식과 간식 그리고 과다한 지방은 영적인 마음을 유지하는데 어려움을 주며 동물의 죽은 고기는 피를 더럽게 하고 뇌를 둔하게 한다. 특별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 직전에 하는 식사에는 깊은 주의를 요한다. 목사는 가벼운 위장과 맑은 정신을 가지고 강단에 올라가야 하기 때문이다.

스트레스와 과로로 몸과 마음이 힘들 때에는 식사를 거르는 것이 훨씬 좋다. 그리하면, 인체는 스스로 체력을 회복할 기회를 얻게 된다. 목사들은 설교를 하는 것보다 실제적인 모본을 보임으로써 양들을 인도해야 한다. 목사가 맛있는 요리와 양념이 많이 든 음식과 또 카페인이 든 차나 커피를 좋아하고 많은 시간과 돈을 낭비하는 골프와 같은 운동을 즐긴다면 교인들은 그런 목사의 설교에 깊은 감화를 받지 못할 것이다. 오늘날의 교인들은 설교를 듣기 원하는 것이 아니라 보기 원한다. 중대한 책임을 지고, 특히 영적인 문제들을 다루는 목사들은 감각이 예민하고 지각이 영민하여서 하나님의 조용한 음성을 잘 들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그들은 음식물의 섭취를 절제해야 할 뿐 아니라 결코 식탁에 값비싼 음식이나 양념이 복잡하게 들어간 음식물을 올려놓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목사들은 날마다 자신 또는 다른 영혼들을 위하여 중대한 결정을 하게 된다. 그러므로 적당한 운동은 많은 유익을 가져다준다. 노동과 산책은 목사들의 마음에 여유를 주고 활기를 준다. 앉아서 정신적인 노동을 하는 사람들을 위해 한 가지 제안이 있는데 매 식사 때마다 단순한 음식 두세 종류만을 취하고 시장기를 면할 정도의 소량의 음식을 섭취해 보기 바란다. 그리고 매일 규칙적으로 운동하면서 그 결과가 어떻게 나타나는가를 살펴보라. 하나님의 말씀이 그대의 영혼 깊은 곳까지 내려가서 놀라운 일들을 이루실 것이다.

식욕의 방종은 정신을 흐리게 하고 속박하며 거룩한 마음을 무디게 한다. 목사들 중 어떤 사람들은 부적절한 식사를 하며 육체적 운동을 하지 않음으로서 정신적 및 도덕적 능력이 약화되는 위험에 처해 있다. 식욕을 완전히 만족시키려고 하지 말고 근육이 활발하게 움직이는 노동을 하면 두뇌 활동은 매우 자유스럽게 될 것이다. 과식은 신체 각 기관의 능력을 빼앗아 위장의 소화력에 집중하도록 만들기 때문에 전신이 피로하고 지치게 된다.

목사들은 건강에 관한 올바른 지식이 있어야 한다. 생명을 지배하는 법칙을 알아야 하며, 또한 정신과 영혼의 건강을 올바로 돌보는 방법을 잘 이해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주신 놀라운 인체의 법칙에 대하여 무지하며 또 그것을 어떻게 돌봐야 할 것을 알지 못하는 영적 지도자들이 너무도 많다. 대단치 않은 세상 문제들에 대해서는 깊은 관심과 열정을 나타내면서 영혼의 강건함에 직결되어 있는 생명의 법칙에 대해서는 너무나 무관심하고 무지하다. 바로 여기에 목사가 해야 할 일이 있다. 만일 목사가 이 문제에 대하여 올바른 태도를 나타낸다면 영혼 구원사업에서 많은 성과를 거두게 될 것이다. 목사는 가정에서나 자신의 생애에 있어서 생명의 법칙에 순응함으로써 몸과 마음의 건강을 유지해야 하며 또한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이 이 문제에 대한 분명한 가르침과 경험을 나누어 줄 수 있게 된다.

복음을 전하는 일과 건강을 돌보는 일은 항상 병행되어야 한다. 예슈아 하마쉬아흐(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에 있어서도 이 두 가지는 완전한 균형을 이루었다. 예슈아 하마쉬아흐께서는 설교하는 일보다 환자를 치료하고 돌보는 일에 더 많은 시간을 보내셨다. 복음이 참된 건강의 원칙들과 함께 묶여짐으로써 하나님의 진리는 실제 생활 속으로 좀더 가깝게 다가오게 된다. 성경적인 참 신앙은 타락한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흘러나오는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키고 실제적 도움을 주는 삶을 살아야 한다. 건강과 생명의 원칙을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가르침으로써 사람들의 관심을 하나님의 진리로 이끌어 오는 것은 매우 중요한 목사의 책임이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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